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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JO-009 김홍도



본관 김해(金海). 자 사능(士能). 호 단원(檀園) ·단구(丹邱) ·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 ·첩취옹(輒醉翁).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圖畵署畵員)이 된 뒤 1771년(영조 47)에 왕세손(뒤의 正祖)의 초상을 그렸고, 1781년(정조5)에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정조를 그렸다. 1788년 스승 김응환(金應煥)이 왕명을 받고 몰래 일본의 지도를 그릴 임무를 띠고 떠날 때 그를 수행, 부산까지 갔으나 김응환이 거기서 병으로 죽자 홀로 쓰시마섬[對馬島]에 가서 일본 지도를 모사(模寫)해 가지고 돌아왔다.

1797년 정부에서 간행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삽화를 그렸다. 산수화 ·인물화·신선화(神仙畵) ·불화(佛畵) ·풍속화에 모두 능하였고,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산수화는 사실(寫實)묘사와 조국애가 어울려서 조국 강산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으로 당시의 신윤복(申潤福) ·이인문(李寅文) ·김석신(金碩臣) ·김득신(金得臣) 같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기법도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여 과감히 시도하였는데, 용주사의 《삼세여래후불탱화》에서 볼 수 있듯이 색채의 농담(濃淡)과 명암으로써 깊고 얕음과 원근감을 나타낸, 이른바 훈염기법(暈染技法)이 그것이다.

김홍도는 백석미남으로 풍채가 마치 신선 같았다고 하며 키가 훤칠한 헌헌장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술과 해학을 무척 즐겼으며, 취중에 그린 작품도 남아 있다. 그의 편지를 살펴보면 그의 성격이 무던하면서도 붙임성이 있고 또 정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던 듯 싶다. 또 독실한 불교신자로 추정된다.

주요작품 : 《소림명월도》《신선도병풍》《소림명월도》《신선도병풍》《쌍치도》《무이귀도도》《낭구도》《군선도병》《선동취적도》《풍속화첩(風俗畵帖:야공도 ·서당도 ·씨름도 ·무악도 등)》《마상청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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