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李滉 , 1501 ~ 1570)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
자는 경호(景浩)이다. 진보(眞寶) 또는 진성이 선생의 관향(貫鄕)이며 호는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옹(陶翁)이라 하고 시호는 문순공(文純公)이다.이황은 1501년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에서 이식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부터 작은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웠고, 혼자 책읽기를 좋아했다.

1533년 진사로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은 이황은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여 박사, 호조 좌랑 등을 거쳐 홍문관 수찬이 되었다. 승진을 계속하던 이황은 36세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이황은 다시 왕의 부름을 받아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다.

인종에 이어 1545년 당파 싸움이 심해지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낙동강 상류인 토계에 양진암을 짓고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이때 이황은 토계를 '퇴계'라 바꾸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1561년 이황은 고향에서 도산서원을 만들며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사색의 시간을 보냈다. 이언적의 학문을 이어받아 더욱 성리학을 발전 시켰으며, 기대승과 8년 동안 학문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황은 서울에 있을 때부터 이미 성리학에 높은 학문으로 '동방의 주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때부터 전국에서 학자들이 몰려와 이황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황은 철저한 사색을 학문의 시작으로 삼았다.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학문에 임해 독단과 경솔을 물리쳤다. 이황은 또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이러한 이황의 학풍은 제자들인 유성룡, 김성일 등에게 이어졌다. 또한 임진왜란 후 일본에 소개되어 그곳 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황은 겸허한 성품을 지닌 대학자로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시와 문장은 물론 글씨에도 뛰어났다. 죽은 후에는 영의정의 벼슬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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