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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JO-017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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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李珥 , 1536~1584 )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본관 덕수(德水), 자 숙헌(叔獻), 호 율곡(栗谷)·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대단히 총명하여 3살때 부터 말과 글을 배우기 시작하고 여덟 살 때는 시를 짓고 13세때 처음으로 과거에 급제하는 등 29세에 관직에 나서기까지 9번을 장원급제 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또한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무덤 옆에서 3년상을 지내기도 하였다. 모친 3년상을 마친 뒤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 사상을 연구하다가 1년후, 유학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속세로 돌아와 학문에 힘을 썼다.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유성룡 등은 태평한 시대에 병사를 기르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였지만, 10만 양병설이 제기된후 8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니 율곡의 뛰어난 식견과 예지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율곡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일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을 주장한 대표적인 정치개혁가였다. 대동법의 실시, 사창의 설치 등 사회정책에 대한 획기적인 선견을 제시하기도한 그의 시무논적 경향은 조선후기 실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저술로는 '성학집요', '격몽요결', '소학집주개본', '중용토석'등과 이를 집대성한 '율곡전서'가 있다.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해주 석담의 소현서원, 법원읍 동문리의 자운서원, 강릉의 송담서원, 풍덕의 구암서원, 서흥의 화곡서원, 함흥의 운전서원 등 전국 20여 개 서원에 제향 되었다. 1624년(인조 2) 문성이란 시호가 내려졌고, 1681년(숙종 7) 문묘에 종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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