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CO-001 이규보



고려시대의 문신 ·문인(1168-1241)으로 본관은 황려(黃驪=여주)이고, 초명은 인저(仁?)이고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다.
9세때 중국의 고전들을 두루 읽기 시작하였고, 문재가 뛰어남을 보였으며, 14세때 성명재의 하과(여름철 절을 빌려 하는 과거시험준비 학습)에서 시를 빨리 지어 선배 문사들이 그를 기재(奇才)라 하는 등 장래가 촉망되었다.

관직 운이 없던 그는 25세 되던 해 개경의 천마산에 들어가 시문을 지으며 세상을 관조하며 지냈다. 26세(명종23년)쯤 개경으로 돌아와 많은 문인ㆍ승려들과 교제하였고 이때 ‘동명왕편’을 지었다.

1196년 최충헌의 쿠데타로 새 정치세력으로 무관층을 흡수ㆍ정리하면서 문인들을 대거 기용하였다. 이때 이규보는 출세길을 달리게 되었다지만 곧 좌천되었지만 최이의 각별한 후원을 받아 최이가 최충헌 사후 최고의 권력자가 되자 그도 비로소 고관으로서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그는 문필로서 양명하고 관리고 현달하고 그의 문집이 후세에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었다.
그는 이권에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문한(文翰)의 관직자이며 양심적이나 소심한 사람이고, 학식은 풍부하지만 깊은 생각 끝에 나타낸 자기표현은 아니었다. 그는 최이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충실히 수행하여 보신과 출세에 힘을 쏟는 일반 문한직 관리층의 한 전형이었다고 할 것이다.
만년에는 시ㆍ거문고ㆍ술을 좋아하여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고 불렸다.

주요저서-《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 > 캐릭터-한국 역사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003 문익점  (0) 2003.09.22
CO-002 최무선  (0) 2003.09.20
SH-007 마의태자  (0) 2003.09.17
SH-006 의상대사  (0) 2003.09.16
SH-005 최치원  (0) 200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