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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JO-020 정약용



정약용 (丁若鏞 , 1762~1836)
조선후기의 학자 ·문신.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삼미(三眉)·여유당(與猶堂)·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탁옹(翁)·태수(苔)·문암일인(門巖逸人)·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요안. 시호 문도(文度). 178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부승지 등의 벼슬을 지냈다. 여러 책을 읽어 학문을 익히는 반면에 아버지를 따라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을 배워 모든 분야에서 고루 밝은 사람이었다. 22세의 나이로 정조 임금에게 중용을 강의하기도 하였는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덕과 평범한 곳에 참됨이 있다는 것을 논하는 학문이었다.

정약용은 서양의 천문, 지리, 농사정책, 수리 기술, 측량법 등에 깊은 관심 가지고 학문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정조 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정약용은 암행어사가 되어 전국을 돌면서 백성들의 가난한 실제 생활을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그 때부터 정약용은 백성들이 벼슬아치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하지 않고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성들의 천연두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마과회통' 이란 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또한 백성들 편에 서서 무슨 일이든 공평하게 송사를 처리하였다.

또 과학 기술을 백성들의 생활 향사에 이용하려고 노력,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 올일 수 있는 거중기를 만들고, 이것을 이용하여 화성을 쌓았다.

'정약용의 저서 내용들은 경학, 역사, 지리, 정치, 경제, 등의 내용이었고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들을 편하게 하려는 뜻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학자들은 정약용을 이렇게 극찬하였다. " 다산의 연구는 조선 역사의 연구이며, 근세 사상의 연구이다. "

주요저서 :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가 있고, 그 속에 《목민심서(牧民心書)》《마과회통(麻科會通)》 등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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