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JO-019 송시열



송시열 (宋時烈 , 1607~1689 )
조선후기의 문신·학자, 노론(老論)의 영수(領袖).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右菴)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으로 1607년 선조(宣祖) 40년 옥천군 이원면 구룡촌(九龍村) 그의 외가 곽씨문중에서 출생한 조선중기의 대유학자이다. 8세때 부터 친척인 송준길의 집에서 함께 공부하게 되어, 훗날 양송으로 불리는 특별한 교분을 맺게 되었다.

병자호란으로 왕이 치욕을 당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잡혀가자, 그는 낙향하여 10년간의 일체의 벼슬을 사양하고 전야에 묻혀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여 척화파 및 재야학자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그는 비로소 벼슬에 나아갔다. 그러나 다음해 2월 김자점 일파가 청나라에 조선의 북벌동향을 밀고함으로써 송시열을 포함한 산당 일파는 모두 조정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뒤 1655년에는 모친상을 당하여 10년 가까이 향리에서 은둔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1657년 상을 마치자 곧 세자시강원찬선이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대신 <정봉유사>를 올려 시무책을 건의하였다. 1658년 7월 효종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찬선에 임명되어 관직에 나아갔고 9월에는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다음해 5월까지 왕의 절대적 신임속에 북벌계획의 중심인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1659년 9월 효종이 급서한뒤 조대비의 복제문제로 예송이 일어나고, 국구 김우명 일가와의 알력이 깊어진데다, 국왕 현종에 대한 실망 때문에 그 해 12월 벼슬을 버리고 낙향 하였다.

주요저서 : 《송자대전(宋子大全)》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 > 캐릭터-한국 역사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JO-021 조광조  (0) 2003.11.05
JO-020 정약용  (0) 2003.11.04
JO-018 정조  (2) 2003.10.31
JO-017 이이  (0) 2003.10.30
JO-016 이황  (0) 2003.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