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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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 8.
JO-021 조광조
○조광조 캐릭터 제작기○ 조광조는 덕과 예로 다스리는 유학의 이상적 정치인 왕도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이상을 너무나 급진적이고 과격하게 개혁을 추진하려다가 실패했던 문신이자 학자였습니다. 본래 영정은 얼굴이 각이지고 야물찬 느낌이었으나 캐릭터화 시키면서 야무진 청년의 느낌만을 강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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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 8.
JO-019 송시열
○송시열 캐릭터 제작기○ 송시열은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학자로 노론파의 영수였습니다. 송시열의 영정을 보면 매우 개성 넘치는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영정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효종때 그가 주장한 북벌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캐릭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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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6.
JO-001 박문수
조선후기의 문신(1691-1756)으로 암행어사로 활약한 시기는 비록 1년 여에 불과했지만, 조선시대 7백 명이 넘었다는 암행어사 가운데 유독 ‘암행어사’하면 박문수를 떠올릴 만큼 공명정대한, 말 그대로 진짜 암행어사다. 옳다고 생각하면 임금 앞에서도 직언을 올릴 만큼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그 때문에 적도 많아서 평생 모함, 탄핵, 좌천의 온갖 고초를 겪었다. 기지와 뛰어난 판단력을 갖춘 데다 신분제도에 구애됨이 없이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인간적 매력은 민초의 영웅이 되기에 충분하다. 정치적으로 소론파에 속했지만 이런 구분은 무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대파의 탄핵이 있을 때마다 사직을 자청했던 것을 보면,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인의 모습이야말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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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2.
CO-009 안향
안향 (安珦 , 1243~1306) 고려시대의 문신·학자. 본관 순흥(順興). 초명 유(裕). 자 사온(士蘊). 호 회헌(晦軒). 시호 문성(文成).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이 되고, 1270년 삼별초의 난 때 강화(江華)에 억류되었다가 탈출한 뒤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다. 1275년(충렬왕 1) 상주판관(尙州判官) 때 미신타파에 힘썼고,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郞)·감찰시어사(監察侍御史)를 거쳐 국자사업(國子司業)에 올랐다. 1288년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원외랑(員外郞)을 거쳐 유학제거(儒學提擧)가 되고, 그해 왕과 공주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들어가 연경(燕京)에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하여, 돌아와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였다. 1294년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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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9. 23.
CO-004 정몽주
정몽주 (鄭夢周, 1337~1392)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영천에서 태어나 24세 때 3번의 과거에 연달아 장원 급제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문과 급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1377년에 사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왜구의 자은 침략에 항의하고 그 곳에 포로로 잡혀 있던 고려의 백성 수백 명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1383년에는 함경도에 쳐 들어온 왜구를 물리치고 이듬해 명나라에 가서 조공의 삭감과 5년간 미납한 조공을 면제받고 명나라와 국교를 회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의창을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1392년 조준, 정도전 등이 이성계를 임금으로 세우려 하자 이를 반대하고 끝까지 고려 왕조를 지키려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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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9. 17.
CO-001 이규보
고려시대의 문신 ·문인(1168-1241)으로 본관은 황려(黃驪=여주)이고, 초명은 인저(仁?)이고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다. 9세때 중국의 고전들을 두루 읽기 시작하였고, 문재가 뛰어남을 보였으며, 14세때 성명재의 하과(여름철 절을 빌려 하는 과거시험준비 학습)에서 시를 빨리 지어 선배 문사들이 그를 기재(奇才)라 하는 등 장래가 촉망되었다. 관직 운이 없던 그는 25세 되던 해 개경의 천마산에 들어가 시문을 지으며 세상을 관조하며 지냈다. 26세(명종23년)쯤 개경으로 돌아와 많은 문인ㆍ승려들과 교제하였고 이때 ‘동명왕편’을 지었다. 1196년 최충헌의 쿠데타로 새 정치세력으로 무관층을 흡수ㆍ정리하면서 문인들을 대거 기용하였다. 이때 이규보는 출세길을 달리게 되었다지만 곧 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