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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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 8.
JO-014 권율
○권율 캐릭터 제작기○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을 지켜냈던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장군은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임진왜란의 2대 명장으로 손꼽힙니다. 권율장군의 영정을 보면 명장다운 카리스마와 힘이 넘쳐 보이는 느낌이였습니다. 캐릭터는 행주산성을 지키는 모습을 장군의 모습을 형상화 시켰습니다. 특히 오른쪽의 이미지는 그동안 작업했던 것과 다른 접근 방식으로 캐릭터를 제작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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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2. 29.
JO-003 사명대사
○사명대사 캐릭터 제작기○ 사명대사 역시 서산 대사와 함께 임진왜란 당시 승병으로 활동을 했던 스님입니다. 캐릭터는 그의 도인적 설화를 강조하고자 일반적인 스님보다는 도인의 이미지로 표현을 하고 자 하였고 특히 오른쪽의 캐릭터는 일본에 가서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케한 기한 행동을 표현 하고자 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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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2. 29.
JO-002 서산대사
○서산대사 캐릭터 제작기○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당시에 그의 제자 사명과 더불어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캐릭터는 승병이 리더답게 듬직한 풍체의 어르신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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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24.
JO-014 권율
권율 (權慄 , 1537~1599 ) 조선시대 명장. 본관 안동. 자 언신(彦愼). 호 만취당(晩翠堂) ·모악(暮嶽). 시호 충장(忠莊).1582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의주 목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 목사로 임명되어 방어사 곽영의 지휘 아래 용감히 싸웠으나 지고 말았다. 그러나 권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의병 1천여 명을 모아 금산군 이치에서 왜군을 무찔렀으며, 그 공으로 전라도 순찰사가 되었다. 다시 군사 8천여 명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진격하다가 도중에 수원 독왕산성에 주둔하여 튼튼한 진지를 쌓으면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왜군과 맞서 싸워서 물리쳤다. 1593년에는 2천8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 진을 쳤다. 여기서 3만에 이르는 왜군과 맞서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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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9.
JO-003 사명대사
조선중기의 승려(1544∼1610)이자 의병장이었으며, 유정은 법명이고 본래 이름은 임응규, 호가 사명당이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13세 때 김천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의 제자가 되었으며, 1561년 승과에 급제하였다. 1575년에 묘향산 보현사로 가서 휴정(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어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고 금강산·태백산 등 명산을 찾아 다니며 도를 닦다가, 충북 옥천의 상동암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제자들을 해산 시킨 뒤 홀로 참선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서산대사의 휘하에 들어가 왜군에게 빼앗긴 평양을 되찾는 한편, 권율과 힘을 합쳐 의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정유재란 때에도 울산에 쳐들어온 왜군을 물리쳐 공을 세웠으며, 1604년 국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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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7.
JO-002 서산대사
조선중기의 승려(1520-1604)였으며 속명은 최여신인데 보통 서산대사라 불린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양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1534년 진사 시험에 떨어진 뒤, 지리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그 뒤 승과에 급제하여 봉은사 주지가 되었으나 곧 그만두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나이로 승병을 모집하여 서울을 되찾는 데 공을 세웠다. 그는 선종과 교종으로 분리된 불교를 통합하는데 힘썼으며, '삼교 통합론'을 내세워 유교·불교·도교를 하나로 합치려는 노력을 하였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고승으로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다. 주요저서-《청허당집》 《선교결》 《심법요초》 《운수단> 《설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