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2003. 11. 3.
JO-019 송시열
송시열 (宋時烈 , 1607~1689 ) 조선후기의 문신·학자, 노론(老論)의 영수(領袖).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右菴)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으로 1607년 선조(宣祖) 40년 옥천군 이원면 구룡촌(九龍村) 그의 외가 곽씨문중에서 출생한 조선중기의 대유학자이다. 8세때 부터 친척인 송준길의 집에서 함께 공부하게 되어, 훗날 양송으로 불리는 특별한 교분을 맺게 되었다. 병자호란으로 왕이 치욕을 당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잡혀가자, 그는 낙향하여 10년간의 일체의 벼슬을 사양하고 전야에 묻혀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여 척화파 및 재야학자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그는 비로소 벼슬에 나아갔다. 그러나 다음해 2월 김자점 일파가 ..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2003. 10. 6.
JO-001 박문수
조선후기의 문신(1691-1756)으로 암행어사로 활약한 시기는 비록 1년 여에 불과했지만, 조선시대 7백 명이 넘었다는 암행어사 가운데 유독 ‘암행어사’하면 박문수를 떠올릴 만큼 공명정대한, 말 그대로 진짜 암행어사다. 옳다고 생각하면 임금 앞에서도 직언을 올릴 만큼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그 때문에 적도 많아서 평생 모함, 탄핵, 좌천의 온갖 고초를 겪었다. 기지와 뛰어난 판단력을 갖춘 데다 신분제도에 구애됨이 없이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인간적 매력은 민초의 영웅이 되기에 충분하다. 정치적으로 소론파에 속했지만 이런 구분은 무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대파의 탄핵이 있을 때마다 사직을 자청했던 것을 보면,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인의 모습이야말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