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2003. 12. 16.
CO-001 이규보
○이규보 캐릭터 제작기○ 최충헌의 쿠데타로 무인정권하에 기를 못피던 문인들이 등용되기 시작 했는데 이규보도 이 시기에 발탁되었습니다. 최충헌 사후 최이가 최고 권력자가 되면서 최이의 각별한 후원을 받은 이규보는 고관으로써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만년에 시와 거문고와 술을 좋아해 삼혹호선생이라고도 불렸는데 오른쪽의 캐릭터가 바로 그러한 모습을 묘사한 것 입니다. 이규보 캐릭터 역시 초상화를 근거로 만들어 졌습니다.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2003. 11. 17.
KO-004 왕산악
○왕산악 캐릭터 제작기○ 왕산악 캐릭터는 거문고를 만든 사람이라는 확실한 컨셉이 있어서 작업하기 수월했던 캐릭터 였습니다. 특히 오른쪽의 전자 거문고(?)를 연주하는 왕산악 작업이 재미있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악기를 현대화 시키고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 재미있지 않나요? (^㉦^;)a..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2003. 9. 17.
CO-001 이규보
고려시대의 문신 ·문인(1168-1241)으로 본관은 황려(黃驪=여주)이고, 초명은 인저(仁?)이고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다. 9세때 중국의 고전들을 두루 읽기 시작하였고, 문재가 뛰어남을 보였으며, 14세때 성명재의 하과(여름철 절을 빌려 하는 과거시험준비 학습)에서 시를 빨리 지어 선배 문사들이 그를 기재(奇才)라 하는 등 장래가 촉망되었다. 관직 운이 없던 그는 25세 되던 해 개경의 천마산에 들어가 시문을 지으며 세상을 관조하며 지냈다. 26세(명종23년)쯤 개경으로 돌아와 많은 문인ㆍ승려들과 교제하였고 이때 ‘동명왕편’을 지었다. 1196년 최충헌의 쿠데타로 새 정치세력으로 무관층을 흡수ㆍ정리하면서 문인들을 대거 기용하였다. 이때 이규보는 출세길을 달리게 되었다지만 곧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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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8. 20.
KO-004 왕산악
고구려시대 거문고의 제작자이며 관리 왕산악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다음과 같은 짧은 내용이 그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전부이다. 진(晉)나라 사람이 일곱 줄의 현악기를 고구려에 보내왔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그것이 악기인줄은 알았지만 그 악기의 성음이나 연주법은 알 수가 없어서 그 음율을 알고 연주법을 아는 사람을 거국적으로 구해서 후상(厚賞)하기로 했다. 그때 제2재상으로 있던 왕산악이 칠현금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한 채 크게 그 법제를 고쳐서 악기를 만들었다. 아울러 백여곡의 음악을 지어 연주하니 마침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 그래서 악기 이름을 현학금(玄鶴琴)이라 했고 후에는 단지 현금이라고 했다. 그가 언제 거문고를 만들었는지 삼국사기에 언급되지 않아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