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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아카이브(1~3기)/자유게시판
2003. 10. 17.
[펌]실화....
이 이야기는 실화 입니다... 제가 겪고도 믿어지지 않는 ...아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T_T 때는 97년도 여름...에 일어났습니다... 그때 016이었던가 019였던가..... 한 PCS 회사에서 왕십리 한양대학교에 왔드랬습니다.....홍보차.... 그리곤 노천극장에서 장기자랑을 열며 제일 점수가 높은 사람에게 PCS 를 주기로 하면서 이상한 대회를 열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안납니다...죄송... 그때 당시 대학가에는 PCS를 가진 학생이 별루 없었드랬습니다. 몇몇 부르조아 층의 아이들을 빼고는 PCS란 그림의 떡이었죠.... 공짜라는 말에 구름같은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자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개그맨... "표.인.봉"....... 장기자랑은 춤으로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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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17.
고전 유머 하나. 여고생과 항문
------------------------------------------------------------ "여고생과 항문.. ?!! " ------------------------------------------------------------ 제가 고3때였는데, 지금이나 그 때나 내신은 중요한 시기.. 더군다나 고3때는... 마지막 시험이었는데 생물 선생님께서는 무슨 마음으로 그러셨는지 글쎄. 지금도 문제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간 정답이 '항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흔하게 쓰는 단어인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잖아요. 곰곰 생각하다가 정말 곰곰 생각했지요. 머리를 쥐어짜고 그건데 그건데 하다가 한 문제라도 맞춰보겠다는 욕심에 . . . . '똥구멍'이라고 썼지요. (그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
맨끝에 디자인 갤러리/캐릭터-한국 역사인물
2003. 10. 16.
JO-008 전봉준
1854∼1895. 조선 후기의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의 지도자로 어릴 적 이름은 명숙(明叔), 호는 해몽(海夢)이고, 유난히 몸이 왜소하고 키가 작다해서 녹두라 불렀고, 녹두장군(綠豆將軍)의 별명이 생겼다. 부친이 민란의 주모자로 처형당하자, 동학에 입교하여 고부 접주가 되었다. 1892년 고부 조병갑의 횡포를 지켜보다가 동지들을 규합하여 1894년 동학 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였다.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군은 전주를 점령하는 등 크게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일본군과 연합한 정부군의 반격으로 우금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전봉준은 정읍에 피신하였다가 순창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러한 전봉준의 자주적인 혁명정신과 애국심은 그 뒤에 3·1 운동과 독립투쟁으로 생생하게 이어지고 오늘날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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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16.
누구 말이 옳은건지....
홍택!!! 당신 생각은 어떠하느뇨? http://www.kmra.net/kmra2002/view.php?id=head2&no=24 왜 이런게 카메라 동호회(SLR Club)까지 올라오는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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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15.
빨간택시의 캐릭터 강좌 0교시-오리엔테이션
본 강좌는 드라마 사이트에 연재 되었던 빨간택시의 캐릭터 강좌를 옮겨온 것입니다. 기획의도 -본 강좌는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자기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볼 수 있게 10회에 걸친 강좌로 기획 되었습니다. -본 강좌를 차근차근 쉽게 따라 오실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 드리고자 준비를 하였습니다. -본 강좌의 대상은 전문인들이 아니라 일반인 대상이므로 부담 없이 참여를 하실 수 있습니다. -본 강좌가 끝나는 날, 여러분들이 만드신 캐릭터를 조카나 친구들에게 자랑해보지 않겠습니까? 각 교시별 강좌 내용 안내 1교시 오리엔테이션 캐릭터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요. 캐릭터 만들기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데 이는 상품화된 캐릭터를 기준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의 생각에서는 상품화된 캐릭터는 전문인이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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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15.
JO-007 김정희
김정희(1786-1856)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며 실학(實學)과 금석학(金石學)에 큰 업적을 쌓은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서화가였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 완당 등 백여 가지를 썼다. 어려서 부터 북학파의 거두 박제가의 눈에 띄어 그로부터 실사구시의 학문을 전수받았다. 1819년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예조참의, 검교, 대교, 시강원 보덕 병조참판 등 높은 벼슬을 지내고 24세 때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연경에 가 당시 중국의 대학자인 옹방강(翁方綱) 등과 돈독히 교류하였고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금석문의 감식법과 서법을 익혔다. 1840년에는 당파싸움에 휘말려 제주도로 유배되어 9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면서 역대의 명필을 연구하여 자신의 독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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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15.
시사 만화 한컷!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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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14.
JO-006 안중근
한말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安重根, 1879 ~ 1910.3.26]은 본관 순흥(順興)이며, 아명 안응칠(安應七)이다.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출생했다. 한학(漢學)을 수학했으나 오히려 무술에 더 열중하였다.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에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다. 1904년 홀로 평양에 나와 석탄상(商)을 경영하고 이듬해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는 것을 보자 상점을 팔아 1906년 그 돈으로 삼흥(三興)학교(후에 오학교(五學校)로 개칭)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쓰다가 국운(國運)이 극도로 기울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 1907년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는《대동공보(大同公報)》의 탐방원(探訪員)으..